“부르카 써도 눈은 보인다”…20억 무슬림 홀린 ‘K아이크림’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VivaTech) 2026' 박람회에서 방문객이 한국 화장품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 뷰티테크업체인 파이온텍 공장에선 ‘할랄(Halal)’ 화장품 원료 배합이 한창이었다. 화장품 제조는 물론 용기에 담고 포장하는 것까지 모두 할랄 인증 마크가 붙은 기계로만 작업한다.
김태곤 파이온텍 대표는 “원료만 따지는 ‘비건(Vegan)’과 달리 할랄은 원료부터 생산·유통까지 전부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혹시나 오염이 생길까 싶어 할랄 제품만 생산하는 날을 따로 정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인구의 25%인 20억명 이슬람교 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할랄 시장’이 국내 뷰티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간 이질적인 문화와 까다로운 인증에 한국 업체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K뷰티가 인기를 끌면서 거대한 시장의 문이 열린 것이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있는 뷰티테크업체 ‘파이온텍’ 공장 내 충진실에서 할랄 전용 기계로 완성된 화장품을 개별 용기에 담고 있는 모습. 최현주 기자
무슬림은 이슬람 율법이 금지하는 ‘하람(Haram)’ 성분이 없는 것만 먹고 쓸 수 있다. 율법에 따라 생산·가공·유통된 제품을 할랄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생산 과정이 까다롭다.
예를 들어 달팽이 점액은 보습에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할랄 화장품엔 사용할 수 없어 마에서 추출한 뮤신으로 대체한다. 화장품을 포장하는 컨베이어베트나 완성된 제품을 배송하는 트럭에서 돼지고기 DNA가 검출되도 바로 할랄 인증은 취소된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감수하는 건 그만큼 할랄 시장이 매력적이라서다. 파이온텍만 해도 지난 7월 할랄 인증을 받은 후 두달 간 할랄 화장품 300만 달러(약 40억원)를 수주했다.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낮으로 공장을 가동하며 2001년 설립 이후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소시지를 배송한 트럭으로 제품을 배송하지도 못할 만큼 제약이 엄격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내년에는 할랄 화장품만으로 1000만 달러(약 136억원) 수주도 무난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할랄 화장품 시장은 2020년 268억 달러에서 지난해 531억 달러(약 72조원)로 성장했고 2035년 1520억 달러(약 206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할랄 인증을 받은 국내 화장품 업체는 40여 곳이다.
코스맥스는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서 3000가지의 할랄 화장품만 만들고 있다. 내년 상반기 새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8억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코스맥스 인도네시아 매출은 2020년 310억원에서 2024년 1132억원으로 뛰었고 올 1분기 516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콜마는 2020년부터 ‘할랄 보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원료 선정부터 생산·포장·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할랄 기준에 맞춰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고객사 입장에선 별도의 할랄 인증 없이 할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지난 3년간 한국콜마의 할랄 화장품 매출은 연평균 17.4% 성장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30%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있는 뷰티테크업체 ‘파이온텍’ 공장 내 포장실에서 할랄 화장품을 포장하고 있는 모습. 최현주 기자
성장 동력은 20억명 무슬림의 30%에 이르는 젊은 무슬림(15~29세)이다. 그간 K뷰티에 관심은 있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사용하지 못했던 젊은 무슬림 수요가 한국 할랄 화장품에 몰려들고 있다. 특히 아이크림 같은 눈 관련 제품이 인기다.
김 대표는 “이슬람 국가들에선 히잡(머리·얼굴을 둘러싸는 천) 밖으로 드러나는 눈가 주름 관리 같은 기능성 제품이 폭발적인 인기”라고 말했다.
이커머스 발달로 글로벌 온라인 몰에 K뷰티 입점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나 한국 화장품 구입이 쉬워진 것도 이유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할랄 화장품을 쓰는 일반인 수요도 늘고 있다. 피부 건강과 친환경·윤리적 소비를 지지하며 철저하게 식물성·천연 성분으로만 제조한 할랄 화장품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비건은 알코올 성분을 사용해도 되지만, 할랄은 알코올도 금지된다.
할랄 시장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이전에는 할랄 인증을 받으려면 해당 국가에서 무슬림 심사단이 파견을 나와야 했다.
심사단의 항공료·숙박료·체류비 등 비용 부담이 컸지만, 최근 국내에 할랄 인증원이 늘면서 부담이 줄었다. 다만 국내 기관에서 인증을 받았더라도 해당 기관이 제품을 수출하려는 현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관인지 확인해야 한다.
강성은 한국무역협회 신무역전략실 수석연구원은 “같은 이슬람권이어도 국가별로 시장 구조, 소비 특성, 제도 환경이 서로 달라 현지 시장에 맞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송=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5122